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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고증 오류 한국 사극에서 고증을 지켜줬으면 하는 이유

누루하치 2023. 3. 1. 16:37

한국 사극에서 고증을 지켜줬으면 하는 이유

1. 고증 잘 지킨다고 명작 아니고 고증오류 있다고 졸작 아니다.

 

2. 근데 고증오류 있어도 명작 소리 듣는 작품들은 연출을 통해 그걸 납득을 시킨다. 고증이 중요한 정통사극이라도 그건 마찬가지임

 

3. 주로 욕먹는 고증오류라는 것들은 작중 고증오류가 있어야 할 꼭 필요한 이유가 없는데도 '멋있으니까' '감독 맘에 안 드니까' 이런 식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이다.

 

맞다. 결국 사극에서 고증이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필수 덕목은 아니며, 납득할 만한 조건이 조성될 경우 사극이라고 해도 고증오류가 단점으로 지적받지 않는다는 게 내 의견이었다.

 

하지만 내가 글 중간에 뭐라고 했는가? 그렇다. 나는 역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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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렇게 생겨가지고 

 

"흠.... 조선 환도는 원래 '띠돈매기' 를 하여 칼날이 앞에 오도록 찹니다만...? 손에 덜렁덜렁 들고 다니다니 이거 고증오류네요" 

 

"흠.... 두석린갑은 실전용이 아니라 의장용입니다만? 게다가 조선 후기에 나왔다구요? 이걸 이순신 장군이 입고 다니다니 야레야레.... 이런 역.사.왜.곡. 참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노는 걸 몹시 즐기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고증오류가 있어도 명작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건 알아도, 내심 고증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고증 개빡세게 해서 내 덕심을 채워 달라' 는 이유만으로 고증을 지켜줬으면 한다면, 굳이 글을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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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란>의 한 장면이다.

란은 전국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어마어마한 영상미, 끝내주는 갑옷 및 의복 고증, 신들린 듯한 배우들의 연기력, 웅장한 전투씬 등등 역덕후와 영화 덕후의 사타구니를 젖게 만들 요소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영화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영화지만, 사실 갑옷이나 옷 같은거 말고 내용만 따지고 들어간다면 란은 고증이랄 게 없는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왜냐고? 란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을 일본 배경으로 각색한 내용이기 때문에, 영화 속 등장인물 중 실제로 일본 전국시대에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역덕들이 란을 물고 빠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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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스토리 외의 물질적인 요소들은 대부분 고증을 충실히 지켜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갑옷, 기모노, 일본식 귀족 여성 화장, 일본도, 일본 활 등등 

 

감독의 연출 의도에 따라 소품 색깔 정도만 변주를 줬을 뿐 기본적으로는 전국시대풍을 충실히 살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가 실제 역사랑 아무 상관 없다는 걸 아는 역덕들이 보기에도 마치 일본 전국시대로 타임머신 타고 날아간 듯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작품만 그런가?

 

일본 영화나 만화 중 저런 물질적인 고증을 살려서 만든 작품은 한두 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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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1962년작 <할복>

같은 감독의 1964년작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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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유의 내려치는 창술을 잘 설명해 주는 만화 <센고쿠>(중간에 작은 컷에서 등장인물 중 하나가 "에이오오!" 라고 소리치는 말풍선이 있는데 사실 이것도 일본 전국시대 특유의 에이 에이 오~ 라는 함성을 고증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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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판타지 게임인 엘든링에 나오는 일본 갑옷마저도 100%는 아니더라도 제법 고증에 맞는 형태와 흡사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100% 고증에 맞는 건 아니더라도 화려한 투구, 도깨비같은 가면, 길쭉한 철판을 끈으로 이어 만든 사각형 어깨방어구 등 일정한 공통점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 일본놈들이 저런 고증 잘 지킨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임?'

 

그렇다면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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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콜옵 시리즈 최신작인 모던워페어 2를 플스 버전으로 예구하면 주는 캐릭터인 '오니'다.

 

대충 다 알겠지만, 콜옵은 미국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꽤 일본 갑옷 느낌이 잘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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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검술 격투 게임인 포 아너에 나오는 켄세이라는 캐릭터다.

 

딱 봐도 보이듯이 누가 봐도 사무라이 캐릭터다.

 

이 게임 역시 서양 게임사인 유비소프트에서 만들었지만 일본풍 느낌이 아주 잘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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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서양에서 옛 일본을 배경으로 게임이나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위에 올려둔 예시들에서 보이듯이 서양애들은 일본풍에 환장하며, 일본풍이 뭔지 꽤 이해도 잘 하는 편이고, 서양애들이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해도 일본풍을 꽤 잘 살리는 편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일본애들이 끊임없이 영화나 만화 등 외국에 수출하는 자국산 문화 컨텐츠에다가 자기네 전통 색깔을 듬뿍 끼얹어서 만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많이 수출하기만 했다면 갑옷의 대략적인 형태마저 서양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풍을 유행시킬 수 있었을까? 

 

나는 일본애들이 '일정 수준의 고증'은 계속 살려왔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고 본다.

 

그게 아까 말한 '일정한 공통점' 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판타지로 가건 사극으로 가건, 자기네 문화의 겉모습만큼은 대충 공통점이 있어 보이게 갔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외국인들에게 일본풍은 이런 것이다! 라고 각인시킬 수 있었다는 거다.

 

이것과 반대되는 예시를 한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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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진은 모두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사극 속 장면들이다.

 

일부러 국가도 맞춰서 가지고 왔다.

 

첫 번째는 <광개토태왕>, 두 번째는 <근초고왕>(백제 이야기 위주지만 저 짤은 고구려 친구들 나오는 장면임), 세 번째는 <달이 뜨는 강>이다.

 

이거 설명해주기 전에 딱 봤을 때 아 이거 고구려다! 삼국시대다! 하는 느낌이 바로 오는가?

 

까놓고 말해서 사전정보 없이 보면 두 번째거 정도 외에는 이게 중국 건지 한국 건지도 구분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럼 이제 다시 스크롤 올려서 일본 사극, 일본 게임, 서양 게임에서 나오는 일본풍 갑옷들 사진을 한번 보자.

 

쟤네들 딱 봤을때 이게 어느 시대 거다 이런 거는 몰라도 최소한 일본 거다, 일본풍이다 이런 느낌은 바로 받지 않나?

 

그렇다. 일본은 이 '최소한의 고증'을 지켜왔기에 결국 일본인 아닌 사람들도 일본풍을 알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것조차도 일관성이 없는 거다.

물론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최소한의 고증? 지킬 필요 없다.

 

아니 뭐 법적으로 고증 어기면 징역 때리는 것도 아닌데 까놓고 말해서 그깟 갑옷 디자인이야 서양 플레이트 아머를 입히건 리니지 갑옷을 입히건 무슨 상관일까?

 

거기에 대해서 또 이야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역덕으로서 생각하는 이유이고, 두 번째는 한국인으로서 생각하는 이유이다.

 

일단 첫 번째, 서양애들이 일본 배경으로 뭔가를 만들면 우리나라에서 늘상 나오는 볼멘소리가 있다.

 

"코쟁이 새끼들 사무라이 닌자에는 환장하면서 우리나라 거는 왜 모를까? 아 아쉽다! 한국풍으로 어크 고오쓰 이런거 나오면 좋겠다!"

 

이 볼멘소리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단 1%라도 올리려면, 나는 그 '최소한의 고증 지키기' 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 거창하게 한국인으로서 운운한 두 번째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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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까 위에서도 언급한 <달이 뜨는 강>에 나오는 고건이라는 캐릭터다.

 

얘 입고 있는 옷을 보자. 이거 한복인가?

 

아니다. 한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치파오에 가까운 디자인이고, 치파오가 아니라고 쳐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옷이라면 모를까 한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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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도 <달이 뜨는 강>에 나오는 해모용이라는 캐릭터다.

 

얘 복식도 한번 살펴보자. 이거 한복인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동양풍 판타지 복식이라고 해야겠지만, 제일 유사한 형태는 당나라 옷이다.

 

뭐 통일신라 배경이라면 실제로 통일신라 귀부인들이 당나라 의복을 입었기 때문에 고증에 맞는 복장이지만, 이거 평강공주 이야기다. 

 

고구려에서 귀부인들이 당나라 옷을 입었다고 볼 법한 기록이나 그림 자료가 없다는 건 둘째치고 

 

드라마에서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에는 당나라가 건국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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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애들이 한복이 자기네 거라고 실시간으로 떠들어 제끼는데

우리나라 사극에서 중국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더 코미디는 <달이 뜨는 강>은 조선구마사랑 같은 시기에 방영했고, 저 드라마에서 현대에 사용하는 간체자가 나오는 걸 시청자들이 지적하자 바로 사과한 걸 두고 조선구마사랑은 다르다며 좋게 이야기하는 반응도 있었다는 거다.

 

솔직히 웃기지 않은가?

 

오죽하면 나는 처음 중국이 한복공정 한다는 이야기 나왔을 때 '올 게 왔구나' 라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예시를 저 드라마로 들어서 그렇지 우리나라의 다른 사극들도 중국 옷 입고 다니는게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 (퓨전사극에 가깝긴 하지만) 주몽 역시 한복 전문 교수가 여캐들이 한나라 옷 입고 다닌다고 지적한 적도 있고. 

 

왜 조선구마사는 쌍욕을 푸짐하게 먹으며 조기종영했으면서 달뜨강은 멀쩡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조선시대의 경우 가까운 시대여서 비주얼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에 역사에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도 고증오류가 있으면 바로 어색함을 느끼지만(물론 칼 차는 방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런 건 모르지만)

 

그 이전 시대의 경우 우리나라 사극에서 이때까지 '자료가 없어서' '퓨전사극이라서' 를 전가의 보도마냥 휘두르면서 최소한의 고증도 안 하고 그냥 동양 판타지 복식으로 떡칠한 사례가 너무 많아서 

 

삼국시대는 이렇다! 고려시대는 이렇다! 라는 틀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중국애들이 우리나라 문화 뺏어간다고 설쳐대는 요즘에는 더더욱 저 '최소한의 고증' 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3줄요약 

 

1.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솔까 고증 안 지켜도 된다.

2. 하지만 역덕으로서 외국애들이 한국풍은 이렇구나 하는 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되려면 일단 어느 정도는 고증을 지켜야 한국풍이라는게 생긴다.

3. 요새 중국애들이 우리나라 문화 뺏으려고 하는데, 그거 막으려면 어느 정도는 고증 지켜야 한다고 본다.

사족을 달자면, 여기서 말한 한국풍은 어디까지나 내가 역덕이기 때문에 한국 전통문화 관련된 것들만 두고 하는 이야기다.
전통문화 말고는 사실 한국풍이 요새 제법 잘 먹히고 있다.
케이팝이 유행하고 쌤쑹폰이 전 세계에서 팔리고 하면서 최근에 외국 영화나 게임 등에서 나오는 한국 캐릭터를 보면 아이돌, IT, 첨단기술 등의 키워드가 꾸준하게 나오고 있거든
현대적인 한국풍이라면 요새 잘 자리잡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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