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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황태자 계승 조선 왕실의 장자 승계 원칙 잘 지켜졌을까??

누루하치 2023. 1. 30. 17:16

성리학을 기반으로 건국된 조선 왕조. 적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했으나, 실제 왕실에서는 얼마나 지켜졌을까?

 태조를 제외한 26명 중 실제로 장자/장손으로 승계한 경우는 9뿐이다.

장남이 후계 없이 사망해 차남이 승계한 4명을 합쳐도 13명으로 절반에 불과하다.

종법상 선순위 계승자를 대신한 사례가 10명,

직계가 단절돼 방계로 승계한 사례가 3명이다.

 

 

<1> 장자/장손 승계(9명)

 

5. 문종 / 6. 단종 / 10. 연산군 / 12. 인종 / 18. 현종 / 19. 숙종 / 20. 경종 / 24. 헌종 / 27. 순종

 

경종(서장자), 헌종(장손)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은 적장자다.

 

 

 <2> 장남이 사망해 차남이 승계(4명)

 

특히 숙종-영조-(장조)-정조-순조 때, 무려 4대 연속으로 장남 대가 끊기고 차남이 대를 이었다.

정조의 경우,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인 후(임오화변) 효장세자 아들로 입적시켜 법적으론 영조의 장손이 된다.

 

 

 

 

 

 

<3> 적법한 형 대신 즉위한 동생(4명)

 

 

 

태종은 형제들을 2번이나 직접 쳤고,

세종은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를 통해,

중종은 반정을 통해 즉위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광해군만 큰 논란 없이 형을 제쳤다.
세자 책봉 당시 조정 모두가 차남 광해군을 지지했고, 아무도 장남 임해군을 거론하지 않았다.

임해군이 왜 이따위 취급을 받았는지는 아래 글 참고.

https://www.fmkorea.com/best/4570468111

 

광해군의 경우 친형 임해군이 아니라, 세자 책봉 14년 후 태어난 이복동생 영창대군과 대립했다.

(16년의 세자 생활에 왜란까지 이겨낸 성숙한 30대지만 서자인 광해군 vs 갓난아기지만 적자인 영창대군)

 

 

 

 

 

 

<4> 적법한 장자/장손 대신 즉위(6명)

 

 

 

정종, 세조,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했다.

(정종은 반정을 일으킨 태종이 반강제로 추대했고, 세조와 인조는 반정을 직접 주도했다.)

 

예종은 의경세자 사후 장조카(월산대군) 대신 세자에 책봉됐다.

 

성종은 예종 사후 장인 한명회(조정 실세)와 자성대비(왕실 실세)의 이해관계가 맞아 월산/제안대군을 밀어내고 즉위했다. (인성대군은 이미 사망)

 

월산대군은 세조의 장손이란 완벽한 정통성을 가지고 숙부(예종)와 친동생(성종)에게 2연속으로 밀려난, 정말 불쌍한 콩라인이다.

 

 

효종은 소현세자의 의문사 이후 인조가 밀어붙여 세자가 됐다.

신하들이 원손(경선군)을 내세웠으나, 인조가 찍어눌렀다.

 

인조는 1년 후 세자빈도 모함해 죽이고, 세 아들을 유배보내는 등 소현세자 일가를 완전히 숙청했다.

(경선군과 경완군은 유배지에서 풍토병으로 요절)

 

 

 

 

 

<5> 왕실 직계 단절로 방계 즉위(3명)

 

 

 

선조는 중종의 서자 중 막내 덕흥대원군의 막내지만, 명종의 총애로 왕위를 잇는다.

참고로, 선조는 조선 왕조 최초의 서출방계 임금이다. “서출”과 “방계” 모두 최초다. 이전 왕들은 모두 “적통” “직계”였다.

(아래 계보에서 인종과 명종은 적자, 나머지 7형제는 서자)

 

 

철종과 고종은 기존 왕실과 매우 멀다.

 

철종은 헌종의 7촌이었고, 순조의 양자로 입적되며 즉위했다.

고종은 철종의 17촌(족보상 9촌)이었고, 문조의 양자로 입적되며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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