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이란 글을 썼고
공감하시는 분들 보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단 생각에 씁쓸하면서도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 글이 톡에서 베스트에 오르는 것까진 확인 했었는데
며칠 전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제 글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확인해보니 그동안 제 글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지
정치인이 공유하고 기사로 나오기까지 하고
지역 맘카페에서부터 온갖 온라인 사이트까지
여기저기 제목만 바꿔서 돌아다닌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도움은커녕 짐이 되는 부모님과
펜데믹이 불어온 버블 경제와 더불어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현실이
괴로워서 그런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저도 이제는 직업을 가진 사회인이 되었고
며칠 전에는 집에서 독립 선언도 마쳤습니다.
그간 저에게도 환경의 변화가 있었고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여다시 글을 씁니다.
해명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추가 설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어요.
첫 번째로는 제 가난에 진정성을 요구하는 물음이 있었는데요.
글쓴이의 집은 정말 가난한게 맞았을까..
라는 의문을 꽤 보았어요.
저도 그랬다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국가에서 우리 집 형편이 안 좋아서 지원을 해줬고
자식들이 다 자라기 전에는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회적 계급 명칭도 붙어봤으니
저는 국가 통계로도
가난한 축에 들었던 환경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백화점 매대에서 부모님이 옷 산다는 말에 반박이 많았는데
백화점 내부 2층 3층만 다니는 분들은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백화점 지상 매대에 나와 있는 옷은 꽤 저렴합니다.
아울렛에서는 그 당시 물가로
9000원짜리 티도 꽤 볼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다면 부모님이 왜 매대에서 자식 옷을 사진 않았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지하 상가 옷은 당시에 더 쌌거든요.
지하 상가에서는 오천원 티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해주신 그대로를 적었습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그 글이 그저 재미로 올려본 가짜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이 그랬더라면 저도 그런 글을 쓰기보단
휴먼 다큐 보는 기분으로 읽기만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두 번째로는 IMF 관련된 부분에 반박이 많았는데요.
저는 제 나이대에서 주로 볼 거라고 여기고
글을 쓰다보니 그때 음슴체로 썼는데
부모님 세대가 쓰는 것 같은 사이트에도 글이 공유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IMF 관련해 지적해주신 반응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모님이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상황이니까 이겨내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하셔서
질리던 차에 툭툭 써놓은 말인데
이 시절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분들께서는
이 시절을 안 겪어 봤으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맞는 말씀이세요.
저는 그 시절을 살아보진 않았으니
경험 없이 말한다는 비판은 마땅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당시보다 생활 환경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느낄 수 있어도
소득 수준이 올라간 만큼
결과값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는 아파트가 몇 동네 없었습니다.
90년도 초반에 1기 신도시도 막 들어온 시점이었고
아파트는 90년대 중반까지도 전체 주택의 35~40%에 불과했습니다.
그 시절을 살았던 분들이라면
친구 집 놀러 가면
10명 중에 많아도 3명, 4명만 아파트에 사는 상황이었고
일부 잘사는 친구가 있을 순 있어도
절반 가량의 아이들끼리는 주거가 비슷한 처지이니
그다지 비교할 것 없이 서로 모여 놀면 그만이라고
지금의 박탈감이 그 정도 박탈감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세대나 그 정도 수준은 겪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저는 소위 말하는 '아파트 키즈' 세대에 태어났습니다.
심지어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중학교를 비교적 잘 사는 동네로 배정받으면서
35명의 반 아이들 중에
아파트에 사는 애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30명이 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사회 선생님께서 한국 집값으로 푸념을 하시면서
아파트에 지내는 애들은 손들어보라고 하셨거든요.
그러더니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부모님께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90년대에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낡은 아파트는커녕
낡은 빌라 반지하에서 지상으로도 올라가지 못한
제 가난이 흔했을 수도 있겠지만
2010년도에 저는 부모님께 감사할 환경은
확연히 아니었던 듯 싶습니다.
손들지 않은 2명은 같이 다니던 친구여서
훗날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갔단 소식 들었으니
학교 다니는 내내 아파트 거주민이 되지 못한 건
어쩌면 그 반에서
절 포함해 3명도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아파트란 것이 모두 시설이 고급화 되어 있고
신축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압니다.
노후화 되어있고 관리가 되지 않는 주공 아파트도 넘쳐 났겠지요.
전세나 월세 거주도 있었을 테고요.
그렇지만 저는 2010년대에는
한 가정이 아파트에 산다는 건 아주 보편적인 일이라는 듯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네요.
제가 가난으로 느낀 최대 불편은 그 점입니다.
굳이 구분 짓지 않아도 대다수가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아서
저는 평균의 마지노선에 관한 의문이 계속 있었어요.
우리 집은 평균적인 삶의 마지노선에 있을까 없을까
그런 의문이요.
그 의문은 쉽게 풀렸습니다.
너 이런 곳에 살 줄 몰랐다고
놀라워 하거나
가엾게 여기거나
급격히 말이 없어지는 반응이 싫어서
어느 순간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도 않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답이 보였거든요.
부모님에게 이런 과거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사람 사는거 다 고만고만하다고 초대 못할 건 뭐냐고 그러십니다.
그런 애들이 나쁜 거라고 어울리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제가 보기에 나쁜 건
동시대에서 기생충 같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극단적인 가난을 목격해버려서
당황한 어린 친구들의 반응보다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고
자식까지 그 세계에 머무르도록 만들려는
부모의 인식 문제입니다.
정부는 반지하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반지하를 폐지하는 정책을 시행한다는데
부모님의 세계는 여전히
둘이 눈만 맞으면 반지하 단칸방에서도 애 낳고 잘만 산다는
20년 전 정서에 머물러 계시지요.
제가 그 말씀에 동의하고 따르는 순간
부모님처럼 살게 될 테고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보여지는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인조차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과거사를 편히 말할 수 있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금하는 예능이 활성화 되어있고
부를 자랑하기보다 가난을 고백하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가
꽤 보편화 되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고백하는 아이돌이나 젊은 연예인 요즘 드뭅니다.
대신 얼마나 잘 사는 집안 출신인지
얼마만큼 벌었는지를 자랑합니다.
놀랄 것도 없이 모든 예능도 상향 평준화 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전처럼 고물 트럭 이끌고
5천원도 안 되는 돈까스 한 끼를 생일 외식으로 하는
구질구질한 인간 극장 식구의 삶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고 보기도 싫어하니까요.
전체적인 삶의 질은 요즘 시대가 개선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가난과 지금의 가난이 무게가 같을 수 있을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이 옳냐 그르냐에 대한 논쟁과 별개로
가난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으로 처주는 정서에서 흙수저로 사는 일과
가난을 그저 흉측하고 피곤한 남 이야기로 생각하는 정서에서 흙수저로 사는 일에는
불편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말씀 듣고 있노라면
제가 가난하게 태어나야만 하는 운명이었다면
차라리 예전에 태어났으면 좋았겠단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세 번째로 제가 중산층도 아닌 중상층을 부러워한단 반응이 기억에 남는데요.
이 지적이 제일 와닿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저보다 잘 살면 그 잘사는 위치의 급을 나눌지 모르거든요.
그런 환경까지 가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다만 제가 본 일부를 조금씩 말해보았을 뿐이지요.
제가 말한
제철과일이라든지
수제쿠키를 내어주신다든지
가족 단위로 한번씩 해외여행을 간다든지
캠핑이나 스키 타러 가는거
각종 교양을 전수받는거
전부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 때를 지나오면서
기억에 남았던 친구들과의 대화 일부를 떼어온 것들입니다.
그 친구들 중에서 일부는
해외여행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일부는 캠핑이나 스키가 익숙치 않고
일부는 부모님이 교양이 없으실 수도 있겠지만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저는 살면서 화목한 중산층이 가장 부러웠고
그들끼리의 계층 구분은 제 수준에서는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확실히 좋은 환경이 고착화 되어있는 곳에 갈수록
남들보다 밑도는 환경이란 걸
확인 받을 기회가 수시로 있어서
중고등학교보다 대학을 진학했을 때
경제적 수준의 격차를 더 크게 느꼈고
대학생활하면서 본 친구들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합쳐져 중상층의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반대로는
나도 해외여행 못 가봤는데 가난한 거냐
나도 외식 적었는데 가난한거냐
일부 공감가는데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고 부모님께 감사하다
이런 반응도 봤었는데..
평균적인 소득에서도 가난의 일부 경험을 겪을 수야 있겠지만
저는 이것 역시도 그것이 총체적인 합이여야 가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득이 평균 수준으로 한정된 이상
어느 집이나 어떤 부분에서는
가난한 집과 일정 수준이 닮을 수 있는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흙수저는 대부분의 경우에 걸쳐
분배와 경험의 결핍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가난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난하다면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 노력하라는 말을 상당히 많이 봤는데요.
이건 정말 부모님 하는 말이랑 똑같은 레파토리라
지겹긴 했는데
저랑 비슷한 환경이었다고 공감하시는 분들이
더 화내면서 반박해주시기도 하셨고...
그러다 저처럼 흙수저 가정과 절연하고
집 나가서 살길 희망하는 분들이 듣기에
더 도움 되는 말이 뭘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정리하고 싶어서 감히 적어봅니다.
흙수저일수록 도태된 어른들과의 대화는 포기하고
정말 도움이 될 만한 마음씨 좋은 분들을 따라가는 것이
그나마 흙인생에 도움 되는 길 같습니다.
흙수저면 힘들게 어렵게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이전 글에도 남겼지만
학교 생활에서 교우관계로 고민을 가지는 아이한테
선생님한테 말해봐
너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봐
너가 참아봐
이런 말 뿐인 조언을 해주는 부모가 도움이 되지 않듯
가난한 환경이니 너가 열심히 하라고
일방적으로 원하지도 않는 컨설팅을 남기는 어른 역시도
그다지 삶에 도움이 되는 어른들이 아닙니다.
비록 원룸이지만
드디어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수준의 집으로 경제적 자립을 하면서
흙수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다고 희망을 느낀 순간은
저한테 밥 한 끼라도 사주고
기운내라고 시급이라도 올려주는 어른들을 만난 때였습니다.
그리고 아직 이 사회에는 그런 어른들이 남아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에 추천해 주신 교수님이나
부동산 계약 때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체크해 주시고
시급도 올려주셨던 알바하던 곳 사장님,
감사하게도 안 쓰는 전자기기를 선뜻 내밀고 주던 선배에게
부모님에게 배운 것보다
더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받았어요.
더는 부모님께 실망하지 않고
흙수저 삶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면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게 중요해집니다.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같은 시대를 보냈어도 어른들의 모습이 제각각 다르듯
부모님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면
부모님이 어떤 인간인지를 파악하고
부모님 동류의 어른들을 멀리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사회에서 만나면서 존경하게 된 어른들은
당시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한테
성인이면 가난은 본인 몫이 되니 알아서 노력하라..는 논리로
현실성 없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글이 불러온 반향 역시
좋은 부모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결핍을 겪었다는 자식 고충을 괘씸해 하기보다
본인 자식에 관한 고민을 먼저 해볼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문화 자본을 놓고
아이에게 해줄 만한 것을 고민하는 부모님들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전 제 글 서핑하면서 그 집 아이들이 좀 부러웠네요.
실제로 너무 안타깝게도
이 글을 공감해가며 사회 현상을 열심히 토론한 곳은
소위 말하는 부촌의 맘카페들이었습니다.
제가 또 하나 씁쓸함을 느낀 부분은...
감히 부모를 계급으로 평가했다
그러면 가난한 부모는 애 낳지 말란 거냐
패배주의라 나약해빠진 소리다
주로 이렇게 화내시는 분들은
저보다 가난하게 살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셨고..
그런 분들께 반박해가며 제 입장에 공감하며 싸우시는 분들은
예전엔 가난했지만 지금은 극복하고 가정을 이루신 뒤에
자식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단 분들이거나
혹은 이전 글에 나온 중산층인데 그랬던 경험이 있거나
혹은 그런 경험 없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겠다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글을 통해 기회의 공정과 분배 문제로 글 써준 분도 봤고
아비투스 관련해 토론하는 분도 보았으나
그 분들은 저와 비슷한 환경이 아님에도
그런 토론을 하고 계셨단 점이
제가 서핑하면서 제일 슬픈 부분이었네요.
공감 능력과 사회 기류를 파악하는 분석 능력.
이런 교양적 소양이 사실 제게 가장 충격을 준 빈부격차였는데
이조차도 양극화가 되는 건
삶의 여유 차이라는 걸
이미 부모님의 삶을 통해 봤으면서도
퍼져나간 제 글을 통해 다시 확인하다 보니 씁쓸해졌습니다.
물론 제가 부모님과 손절할 기로에서
글을 워낙 마음 먹고 썼던 지라
부모님들 많은 사이트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따라오는 건 이해합니다.
부모끼리 자식 비교도 편히 하는 한국에서
자식이 부모 조건을 못 따질 건 뭐 있나 싶긴 해서
반항심에 쓴 글은 맞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부모님조차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결혼하고
애를 원하면 원하는 대로 낳을 수 있었으니
인생에서 평생 선 적 없었던 갑의 위치에서
한 인간의 인생을 휘두를 권력을 20년 가까이 챙겼다면
그 지위에 만족하면 되지
공경까지 얻어야 하나 싶네요..
저는 요즘 취직했으니 결혼할 사람이나 알아보라는 부모님 말씀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오은영 박사님께서
이 시대의 양육은 소비재에 속한단 말씀을 하셨는데요.
남들 다 낳으니까 본인도 낳고 싶다는 얄팍한 이유로 인간을 낳았단 건
명품 차보다 비싼 부모라는 사회적 역할을
생각 없이 사치재로 구매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난해도 낳아준 부모님이 감사한 분들께는 상처가 되었다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모님께 감사한 분들도 분명 계실 테고
저는 가난해도 태어난 자체가 좋단 분들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분들이 감사한 만큼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가난 역시 탈출할 수 있길
같은 흙수저 입장에서 응원하는 바입니다.
다만 대물림을 끊는 방식의 차이라고 알아주기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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