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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몇 가지 사례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가정보원

에꼬로크 2023. 1. 21. 13:27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 국가정보원 원훈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다른 정부 부처와 다르게 모든 업무는 대외비이며,

대공,방첩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의 업무는 철저히 가려져 알수없지만

그 중 알려진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1. 95년 부여무장간첩 사건

 

여러번의 남파와 거물 간첩을 북으로 무사 귀환 시켜 북한의 영웅으로 불리던 북한간첩 김동식은

남한의 고정간첩 '봉화 1호'를 무사 복귀시키라는 당의 명령으로 또 다시 남파된다.

 

그리고 95년, 봉화 1호의 복귀를 위해 남한으로 침투한 김동식은 얼마못가 신분이 노출되고 군,경과 총격전 끝에 붙잡혔다.

어떻게 된 일일까?

 

봉화1호는 사실 1980년 국정원에 검거됐었고, 포섭돼 국정원의 역 공작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봉화1호의 역 공작 덕에 북한의 지령과 공작 동향 등을 파악했고, 이를 미끼로 김동식 일당을 일망타진 했던 것.

 

김동식은 현재 남한으로 전향한 상태다



2. 2005년 서울양재동 산업스파이 검거

 

당시 국정원은 B사에 있는 K씨가 Y사의 핵심 기술을 빼돌리려는 정황을 감지했으나 증거가 없었다.

 

이때부터 국정원 요원들은 꽃가게 배달원, 주차장 관리원, 음식점 점원 등으로 위장해 K씨 주변을 감시했고,

특히 A씨(18년 경력의 40대 초반 여성요원)의 활약이 컸는데, 옆 사무실의 직원으로 위장해 용의자들에게 살갑게 접근했고 다수의 결정적 첩보를 낚아왔다 한다. 

용의자들은 그녀가 옆 사무실 아줌마인 줄로만 알았지 국정원 요원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국정원은 ‘용의자들이 기술을 유출해 해외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용의자 중 1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고 한다.’ 등의 첩보와 정보를 검찰청 공안부에 넘겨 공항에서 K씨를 체포할 수 있었다.

 

 

 



3. 2010년 황장엽 암살조 사건

 

"탈북하고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때 가장 놀랐던건 제가 살던 지명, 위치, 출신 및 학교, 심지어는 선생님 이름까지 알고있더라구요."

"국정원에서 취조를 하던 중 어릴때 기억이 정말 생각안나 조사가 밀리자 직원 한분이 '앞글자를 말해주면 기억해낼수 있겠느냐'라고 했고 들으니 딱 생각이 나면서도 국정원이 참 무서운 곳이구나 했죠"

- 탈북자 인터뷰 中

 

 

97년 북한의 고위층(김일성의 집안사람)이자 주요 인물인 황장엽이 월남했다.

 

2009년 북한은 정찰총국 소속 동명관,김명호에게 남조선 침투를 지시한다. 황장엽을 암살하라던 것이다.

둘은 실제 있던 북한 사람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모든 디테일을 다 외운뒤 실행에 옮긴다.

 

치밀하게 준비한 이들은 북한을 빠져나가는 과정부터 의심을 없애기위해 탈북자들과 같이 두만강으로 탈북한 뒤 라오스와 태국, 방콕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공작원들과 정보원들로부터 이러한 첩보를 미리 얻었다. 

국정원은 우선 북한의 주요인물부터 혹시 모를 다른 탈북자들까지 추적도 병행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탈북자와 다른 2명의 남성을 추려냈다. 우선 탈북자들은 국정원의 조사를 받는게 원칙이므로 자연스러운 과정인척 취조를 시작했다.

 

2명의 간첩은 준비한대로 완벽하게 자신의 신상을 말했지만 정말 세세한 디테일에서 국정원에게 덜미를 잡혔다.

 

—흰실인민학교 나왔다고 하던데 구조가 어떤가(국정원) : “…”(김씨)

—교장 선생님 인상착의는 어땠나 :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 앞의 다리가 나무인가 철제인가 :  “…”

—정성인민학교의 유명한 구기종목은 무엇인가 : "..."

 

정말 거기서 살지않으면 알수없는 정보를 말하지 못하자 결국 2명의 간첩은 자백했다.

이들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4. 북한공관 중요서류 탈취

 

90년대 초중반 서방국가에 주재하던 한국의 공작요원이 현지 북한 공관에 침투해 중요 서류를 통째로 확보한 일이 있었다.

 

북측의 항의로 정황을 파악한 해당국은 "남의 나라에서 이런식으로 대담하게 절도행위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등 사건이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우리측은 사과와 함께 해당 요원 즉각 소환 및 문책조취를 하겠다 했다.

 

그러나 표면상 조치와 달리 그 요원은 오히려 특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국정원은 일전에도 중동 모 국가에 수출된 북한 미사일 설계도를 통째로 가로챈; 전력이 있었다.

 

 

5. 70년대 아프리카 공작 사건 

 

70년대 아프리카는 북한과 수교하던 국가들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 아프리카 내 북한의 입지를 줄이려던 국정원은 위험하면서도 기발한 행동을 했다.

 

당시 A국(정확한 국가명은 안 알려짐)은 내전으로 인해 정부군과 반군이 치열하게 교전하고 있던 상황이였는데,

우리 요원은 전투 현장에 잠입해 사살된 반군의 시신을 돌며 총기를 몰래 수거했고 그 자리에 '북한제' 소총을 대신 쥐어놓은 것. 

 

A국은 북한이 반군을 지원한 걸로 오인하고 즉시 단교 후 우리나라와 수교했다.

 



국정원의 첩보능력과 대북정보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도 알려지진 않았지만 수많은 건의 사건들이 국정원의 정보력과 첩보로 해결이 된 것도 많을 것이다.

 

보통 안보위협, 산업스파이 사건이 뉴스에 나오면 경찰이나 검찰이 전면에 서지만 

대체로 국정원이 뒤에 있다는건 공공연히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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