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옥사 정철이 일으킨 옥사로 사실 선조가 권력이 비대해진 동인을 숙청하기 위한 일로 보여지는 사건으로 하마터면 조선의 사직을 끊어버릴 뻔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선조는 여기서 교활할 만큼 능력있는 사람들은 살려주는데 1번째 케이스가 승병장들인 휴정과 유정대사로 기축옥사에서 무엽이라는 승려가 고문을 당하던중 휴정과 유정이 역모와 관련있다는 자백을 한적이 있다.
이에 의금부에서 두사람을 잡아들여 조사를 했으나 선조는 휴정과 유정을 풀어주라는 어명을 내렸으며 두사람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승병을 이끌면서 조선을 구한다.
정유재란에서 성웅의 남자로 불린 안위 역시 기축옥사로 인해 죽을뻔 했는데 바로 조선의 악습중 하나인 연좌제에 걸려 죽을뻔 한것으로 안위의 경우 정여립의 5촌조카였기에 연좌제에 걸려 죽을뻔 했다.
실제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조사를 받았으며 연좌제에 걸려 죽을뻔 했으나 선조의 비호로 목숨은 건진체 평안도 용천으로 유배가는선에서 목숨을 건진다.
전쟁이 터지자 거제현령이 되어 당황포 해전에서 적선 1척을 격침시키는 동시에 부산왜영을 불태우는 활약을 했으며 명량해전에서는 충무공의 샤우팅을 맞고 돌격장을 맞아 명량해전에서 활약을 해 충무공의 천거로 전라우수사에 제수되어 충무공 최후의 해전인 노량해전에 참전하는등 정유재란시기 성웅의 남자로 불렸다.
의병장 이산겸 역시 임진왜란이 터지기전에 하마터면 역시나 죽을뻔 했는데 이유는 역시나 사촌들인 이산해와 이산보가 기축옥사에 제대로 역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산해는 기축옥사를 일으킨 정철의 정적이었기 때문에 사촌인 이산겸은 까닥하면 연좌제로 묵여 죽을위기에 처했으며 실제로 사촌인 이산보가 기축옥사의 영향으로 귀양을 갔다.
이산겸의 경우 영향을 전혀 받지않았으며 나중에 임진왜란 시기 송유진의 난에 휘말려 억울하게 옥사를 당했는데 그런데 이것도 이산겸이 병력을 모아두고 왜군과 교전을 벌이지 않은게 원인이었기에 이산겸을 옥사시킨 선조에게도 나름의 쉴드거리가 있다.
성웅인 충무공도 기촉옥사에 역일뻔 한적이 있는데 충무공의 조카인 이분의 행장록에 따르면 이때 하급관리였던 충무공이 당시 투옥되었던 정언신을 면회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문에 충무공과 정언신을 역으려고 했다는 주장이 조카인 이분의 행장록에 나오며 당시 충무공은 정언신의 면회에서 의금부 관리들의 술자리 파티를 보았다고 한다.
충무공이 정언신을 면회간 이유는 정언신이 충무공을 역사에 등장시킨 인물이기에 그러했는데 정언신과 충무공은 1582년에 벌어진 여진족 니탕개의 난을 같이 진압한 사이였으며 정언신은 충무공, 1차 진주성 전투의 영웅인 김시민, 충무공의 전우인 이억기와 신립,이일등의 능력있는 무장들을 선조에게 천거한바 있다.
북인의 영수이자 의병장으로 유명한 정인홍 역시 기축옥사의 영향으로 정개청, 동료인 최경영과 같이 제거대상에 이름이 올랐으나 선조는 정인홍의 능력이 아깝다는 이유를 들어 삭탈관직하는 선에서 정인홍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정인홍은 꼬장꼬장한 성격과 광해군대의 병크등의 과가 있었지만 임진왜란에서 의병을 일으켜 성주성을 수복하는 전과를 기록했으며 정유재란 시기에는 영남지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병장으로 성장해 영남지방의 의병들 대부분은 정인홍의 지휘를 받을정도로 전쟁시기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실제로 인조가 정인홍을 처형 하려할때 대신들이 유배형으로 낮추어 주자고 한 이유자체가 바로 정인홍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의병장으로 공적을 세웠기 때문이다.
선조의 경우 이렇게 기축옥사를 일으키면서도 능력이 출중한 인재들이나 사람들은 골라가며 살려주었으며 자신에게 꼬장꼬장하게 군 동인들을 모조리 족쳐벌였다.
다만 선조가 유일하게 후회한 케이스가 있으니 바로 정언신으로 사망 당시 우의정으로 이사람 능력이 출중한 관료로 우참판 시절에 조선의 골칫거리인 니탕개의 난을 진압했으며 진압과정에서 공을 세운 이순신,이억기, 김시민 같은 능력이 출중한 무신들을 선조에게 천거할 정도로 정무능력과 인재를 보는 시야가 뛰어난 관료였다.
또한 충무공의 운명을 바꾸는 녹둔도에 군사와 둔전을 설치한것 역시 이사람으로 임진왜란에서 정언신이 선조에게 천거했던 이순신,김시민,이억기가 전쟁영웅으로 활약하자 선조는 그제서야 정언신을 벌한 자신의 행위를 후회했으며 전쟁이 끝난후 정언신을 복권했으며 류성룡과 병조판서 황정욱은 정언신이 살았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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