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 논란

임진왜란 당시 멍청했던 일본 임진왜란 조선 의병 활동의 이유는 세금폭탄??

누루하치 2022. 11. 18. 18:38

먼저 일본의 세율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일본을 휘어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토지 측정과 수확량 조사 사업이다.

이 사업을 태합검지(太閤檢地 : 타이코켄지) 라고 부른다.



당시 일본의 농민들은 높은 세금을 내고 있었고, 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자

"이 새끼들 또 세금 올리려는거 아냐?" 라는 킹리적갓심을 가지고 반발했다.

이런 민심은 히데요시가 농민들을 3만명 정도 죽이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를 통해 세수를 부과하였는데,



사실 그 전의 세금은 다이묘(영주)가 휘하 사무라이에게 "기분이다, 이번달은 천만원을 바쳐라." "올해는 전쟁을 해야하니까 오천만원을 내라"

정해주면 사무라이가 거기에 맞게 세금을 거둬서 상납하는 식이었다.

이런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지역마다, 영주마다, 시기에 따라 세율이 달랐다.



그리고 세금을 정부에서 직접 거두는 것이 아니라



농민이 촌장에게 세금을 내고

촌장이 농민들에게 모은 세금을 사무라이에게 바치고

사무라이가 각 농촌에서 모은 세금을 다이묘에게 바치고

다이묘는 그 중 일부를 쇼군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쓰는 식이었다



이렇게 중간에 끼여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쇼군이 세금을 30% 내라고 하면

다이묘는 자기도 돈 좀 써야하니까 50%를 내라고 하고

사무라이는 60%를 거둬서 10%를 자기가 떼먹고

촌장은 70%로 올려서 쌈짓돈을 만드는 식으로 이중삼중 과세가 이루어졌다.



덕분에 센고쿠 시대에는 최소 67%에서 80% 이상까지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유일하게 호조 가문에서 잠깐 40% 세금을 뜯은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감동한 호조 영토의 농민들이 호조를 침략하는 히데요시에게 결사 항전해서 애를 먹을 정도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런 조세 과정을 일원화하고 자신의 직할지에는 농업과 상공업에 각각 50%의 세금을 매긴 것으로 추정된다.

(도쿄대학의 마키하라 시게유키 교수의 논문 일본의 근세화와 토지・상업・군사 참조)



직할지가 아닌 곳은 생산량의 2/3, 즉 약 70%를 세금으로 뜯어갔다.

(NHK 학교 역사 교보재 참조)

반면 조선에서는 조용조 -> 결부제 -> 대동법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선조는 대동법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었는데, 세율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거 따지려면 너무 복잡하고.

결부제를 기준으로 알아보겠다.



(근데 결부제도 복잡하다.)



결부제는 토지 단위를 결이라는 기준으로 세는데

1결은 토지의 생산량에 따라 등급이 나뉘고 등급에 따라 넓이도 달라진다.



1등전의 1결은 2983평(9,859.7㎡)이고

2등전의 1결은 3,241평(10,712.5㎡)

3등전의 1결은 3,930평(12,990㎡)이 되고... 어쩌구 하는건 솔직히 알 필요 없고.



1결은 쌀 300말을 생산할 수 있는 넓이의 토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넓이를 정했다고, 진짜 일괄적으로 쌀 300말을 생산해낼 수 있을리가 없다.

날씨에 따라 다르고, 품종 따라 다르고, 지역따라 다르고, 쌀만 심는 것도 아닐거고, 천재지변도 있고...



이래서 토지마다 세율이 조금씩 달랐다.

근데 이걸 세율로 적어둔게 아니라 조세로 거둔 쌀의 부피 단위로 적혀있어서, 다시 환산한다고 계산하면 대가리 박살난다.



사실 논문 찾아 읽으면서 계산하다가 대가리 박살났다. 시발 벌써 세시 사십분이네. 이게 무슨 병신짓이지...



일단 결론만 말하자면 당시 조선은 평균적으로 수확량의 약 25%를 세금으로 거두어갔다.

흔히 세율이 10%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는 세금을 십일조라고 돌려서 표현하던 것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대충 우리 임금님이 세금을 이거밖에 안거두시네요 허허 이런 유교적 겸손함의 표현인가봄

(서울대 국사학과 김건태 교수의 논문 결부제의 사적 추이 참조)

그럼 이 새끼들이 미쳤다고 70%를 조선에서 뜯어갔을까?

세율이 다를거라는 생각도 안하고???



일본놈들이 그렇게 빡대가리들은 아니었다.

차별 받던 함경도 사람들은 임진왜란이 터지자 국경인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선조의 맏아들인 임해군과 여섯번째 아들인 순화군이 함경도에 피난을 와 있었는데

반란군은 정부군을 몰아내고 이 왕자들을 포박해서 가토 기요마사에게 투항했다.



(물론 임해군이랑 순화군은 취미로 사람을 죽이는 애들이라 옹호할 사람들은 아님)



자다 일어났더니 갑자기 도 하나가 점령지로 굴러들어온 가토 기요마사는 와 씨발 신난다 기분이다 

너희는 투항했으니 세금을 30%만 받겠다 라고 선언했다.



문제는 위에서 말했듯 조선의 평균 세율은 25%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함경도는 국경지대라는 것이었다.



국경지대는 사신 접대비, 국경에 주둔하는 군대 유지비 등을 독박써야했다.

그러다보니 공정성을 위해 세율을 낮춰주었다.



이렇게 정해진 세율은 함경도에 한해서 밭은 약 0.533%, 논은 약 0.89% 정도였다.

오... 대충 1%로 잡아도 세금이 30배가 늘었네?



개 열받은 함경도 사람들은 의병을 일으켜서 국경인의 모가지를 땄다.

함경도 사람들이 얼마나 빡쳤는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일본군을 개박살을 내버렸는데

이 때 있었던 전투를 묶어서 북관대첩이라고 할 정도다.

미안하다. 일본놈들은 빡대가리가 맞았다.

세줄 요약

1.임진왜란 때 일본 세율 70%, 조선 세율 25%

2.왜군은 민심 잡겠다고 본토보다 적은 30%만 세금 받음

3.의병 일어나서 개박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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