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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논란

일본이 원폭을 맞게된 과정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은 이유

by it관리 주식 코인 돈관리 2022. 8. 7.




다들 잘 아는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공습.
 
또한 잘 알다시피 일본은 진주만 공습 이전 선전포고문을 전달하지 못 함.
 
(못 함 이라 표현한 이유는 기습 전 선전포고문을 주미 일본대사관에 발송하긴 했으나 현지 일본대사관의 병신같은 일 처리로 진주만의 푸닥거리가 다 끝난 후에야 미국 정부에 전달 됨. 그나마도 이게 선전포고문인지 선전위협문인지 분간이 안될 어중간한 어투로 미국의 화를 두배로 더 돋움)
 
 
 
 
 
 
 
 
 
하도 많아 몇건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전쟁범죄.
 
일본군이 거쳐간 모든 땅에서 최소한 수 건 이상의 굵직한 전쟁범죄 기록이 튀어나옴.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일주일 밤을 새워도 다 못 헤아릴 정도로 많은 전쟁범죄를 행함. 점령지의 연합국 시민들 또한 무사하지 못 했고 연합군 포로들은 바탄 죽음의 행진 등을 비롯한 온갖 탄압을 받음.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히면 4할은 사망함.
 
 
 
 
그러니까 만약 전세가 역전된다면 상대의 보복성 공격은 어떤 식으로든 이미 예약된 상황.
 
 
 
 
 
 



1943년 11월 27일, 카이로 선언.
 
 
간략하게 추리자면 ' 일본 점령지 및 식민지 다 내뱉어야 할 것이며 항복할때까지 뚜까팬다. '
 
 
1943년 11월은 타라와 전투가 벌어진 달로써 과달카날 이후 미-일간의 공수가 바뀌어 전개 된 미군의 공세가 시작되는 달이었음. 그러니까 아직까진 일본이 배짱 튕길만했던 상황.
 
 
 
 
 
 



44년 3월 임팔작전 폭망.
 
 
 
 



 
44년 6월 필리핀해 해전 패배, 주력 항모가 모조리 수장 됨.
 
 
 
 
 



44년 7월 사이판 전투 패배.
 
B-29의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 가시거리가 확보 됨.
 
 
 
 
 
 



 
44년 10월 레이테만 해전 패배.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기동부대가 사실상 전멸.
 
 
 
 



44년 10월 필리핀 공방전 시작.
 
(45년 2월쯤 되면 사실상 필리핀 전역이 미군 수중에 넘어가고 일본 남방총군 주력이 괴멸함)
 
 
 
 
 
 
 
 
 
 
44년 4분기쯤 되면 이제 더 이상 일본에겐 가망이 없었음.


하지만 별의 별 정신나간 자폭 병기들까지 투입해가며 악착같이 버티고 또 버팀.
 
 





45년 3월 도쿄 대공습.
 
(수도가 박살났다는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왠만한 일본의 대도시들은 다 폭격 쳐맞고 아비규환이 됨)
 
 
 
 
 
 
 



... 그래도 항복은 안한다 !! 1억 총옥쇄간다 !!
 



45년 3월 이오지마 전투 패배.
 
일본 전 국토가 공습 사정권에 들어 옴.

 

 



 
45년 6월 오키나와 전투 패배.
 
오키나와에서는 남녀 중학생들까지 동원해다 전선에 투입했지만 깡그리 전멸함.
 
 
 
 
 
 
 
 



 
45년 7월 구레 군항 공습.
 
일본 해군 연합함대 잔존 수상 전력 깔끔히 수장.
 
 
 
 
 
 
 
 
 
 



 
45년 7월 독일 포츠담.
 
미국, 영국, 중화민국 3국 지도자 명의로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함.
 
의외로 일본이 항복을 한다면 독일에 비해 굉장히 관대하고 파격적인 처우를 약속함.
 
(회담에는 스탈린도 참석했으나 선언문에는 참석하지 않음)
 
 
이 정도 했으면 잘 알아들었겠지..?
 
 
 
 
 
 
 
 
 
 
 



 
응 안사 꺼져~
 
 
(아예 당시 총리대신 스즈키 간타로 명의로 포츠담 선언을 전면 부정하며 전쟁을 지속하겠다 맞받아침)
 
 
 
 
 
 
 
 
 
 
 
 
 
 
 
 
 
 
 
 



 
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거 어떻하지 ;;
 
(이 시기 육군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와 해군 일부, 문민 화평파가 극한 대립을 함)
 
 
 
 
 
 
 





왜 대답이 없어? 항복할거야 말거야

 
 
 
 
 







 
 
 
 
 
 
 
 
 
 
 
 
 



 
 
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즈뜨라스부이째?
 
 
45년 8월 9일 같은날 소련군 만주 침공.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강경파와 화평파간의 분쟁으로 항복할지 어쩔지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소련군의 가공할 진격 속도를 보고는 급격히 무조건 항복 쪽으로 기울어 짐)
 
 
 



 
GG.....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원망의 대상을 찾는다면 미군이 아니라 기회를 줬음에도 항복안하고 끝까지 쳐 뻐기며 국민들을 사지로 몰고 간 야스쿠니 신사의 그 머저리 전범 놈들을 원망해야 될 텐데
 

정확히는 원폭 쳐맞을때까지도 일본 강경파들은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이 아직 남아있으며, 조약 갱신 시기때 소련과 동맹을 맺으면 조선 중국 전선을 유지해서 계속해서 전쟁을 계속 할 수 있다고 주장했음. 원폭 쳐맞고 항복했다는 건 막대한 예산을 원폭에 꼴아박은 미국측에서 주장한 프로파간다에 더 가까움. 일본놈들은 1억 총옥쇄를 주장하며 자살병기를 쓰던 것처럼 자국민의 목숨도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임. 방사선의 위험은 2차 대전 끝나고 비키니 섬에서 방사능에 관한 연구가 되기 전까진 몰랐음.
근데 핵 쳐맞고 난 다음 아직 행복 회로 돌리던 일본 군부에게 스탈린이 응 이제 불가침 끝이야 우리도 내려간다.
라고 통보하니까 이젠 꿈도 희망도 없다고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거임.
그 당시에 강경파가 얼마나 미친놈이었냐면, 일본 본토가 함락돼도 조선 중국으로 망명정부를 옮겨서 계속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던 놈들이었음. 지들이 프랑스인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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