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data-ke-size="size18">바쁘신 분들을 위해 이 영화를 생각보다 흥미롭게 본 핵심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마블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극단적으로 낮아져 있던 점
2) 의도치 않게 문화의 날에 7000원으로 관람했던 점
3) 바뀐 캐시 랭 역의 캐스린 뉴턴의 외모와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점
1. 이 영화의 근본적인 약점은 발단에 있다 (부제: 왜 스타워즈처럼 되지 못했을까)
-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앤트맨3의 전개는 분명 스타워즈의 전통적인 전개 방식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스타워즈가 전설적인 시리즈가 되게 한 가장 밑바닥 힘은 타투인 장면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주인공 루크-그리고 프리퀄의 아나킨의 이야기는 이 촌 동네 타투인에서 시작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삭막하고 재미없으며 한계가 명확한 고향 땅(현실)을 떠나 미지의 외부 세계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타투인에 떠오른 2개의 태양은, 그들이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청년이 바라보는 세계 그 자체입니다. 타투인은 집과 자연 상태, 주어진 현실을 상징하고 외부 세계는 문명과 꿈, 그리고 영화 그 자체처럼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세계를 상징합니다.
그 외부 세계에 대한 간절한 갈망과 불타는 호기심이야말로 주인공들의 힘이자 영화를 보던 관객들을 기대하게 하며 사로잡은 힘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과 이상 간의 갈등에서 피어나는 어떤 열망은 전통적인 미국인과 다수의 청년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할 때 경험하는 혼란 속 열망이기도 하며, 영화가 만들어졌던 70년~80대에서 21세기로 향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근간이 되어 이후에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과 캐릭터들과의 만남, 장소와 사건들이 관객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기도 하고 신나게도 하고 긴장하게 하기도 하고 두렵게 하기도 하는 것이죠. 어쩌면 스타워즈의 이러한 설정은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많은 게임들에서 빈털터리로 시작했다가 점차 강해지고 성장해가는 방식에 영감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앤트맨3는 그런 점에서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우선 영화 제목대로 2020년대를 살아가는 미국인 가장으로서 앤트맨의 고유한 정체성과 전통적인 특징을 살리면서도 스타워즈 같은 외부 세계로의 성장 모험물로서의 요소를 넣으려 하다 보니 서로의 매력이 반감되었달까요, 기존 앤트맨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공간에서 (어렸을 법에 상상했을 법한) 예상치 못한 여러 변주를 했기 때문에 관객의 흥미를 일으키는 요소가 분명 있었습니다. 가령 "저 은밀한 곳에 내가 작아져서 몰래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같은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시킨 거죠. 그 외에도 일상의 질서를 유쾌하게 비튼다는 점이 앤트맨 고유의 매력이었습니다 .
제작진의 입장에서 보면 공간 배경을 바꾸긴 해야겠는데 이미 오랫동안 거대한 마블 세계관의 일부로서 소개되어온 캐릭터들이니 설명은 최대한 생략하고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 중요한 장면들을 보여줘야겠다 싶어 발단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게 되는데, 바로 '캐릭터와 관객 입장에서 양자 영역으로 가는 것이 매력적이며 기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가볍게 다룬 것'입니다.
뭔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은 주인공 일행과 관객들이 납득할만한 기대 요소가 있어 어떤 이유에서건 "빨리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차올라야 하는데, 가뜩이나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은 양자 영역으로 가는 것이 관객의 기대도 충분히 불러일으키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는 마치 제작 일정에 쫓기듯이 서둘러 양자 영역에 빨려 들게 됩니다. 이미 이 시점부터 양자 영역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전개, 사건들이 관객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호기심과 흥미를 일구기가 어려운 것이죠.
다시 말해 주인공들과 관객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양자 영역에 있는데 그것을 집요하게 가로막는 존재가 캉이라는 게 명확했다면 서사가 좀 더 흥미로웠겠습니다만 이 부분이 어정쩡해지면서 극에 힘이 충분히 실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가족'이라는 테마 안에서 주인공 모녀의 관계 성장을 위해 밑밥을 깔아놓긴 했지만 관객의 정서를 울리기에는 편집 과정에서의 압박이 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드라마를 줄이고 액션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름 양자택일을 한 거 같아요.
2. 정복자 캉과 멀티버스, 그리고 어벤져스 후속작에 대하여
- 디플 드라마 <로키>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한 캉은 성경에서 선악과를 먹인 뱀이 거짓신으로서 아담과 이브 앞에 나타난 재회이자 현신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역할은 미래에서 온 역할이지만 과거 고전적인 시네마-유성 영화 개막 시기에서 건너온 듯한 그의 깊은 발성은 21세기를 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 마블의 시공간을 비트는 느낌이 들게 하죠. 간헐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불안정한 표정 연기는 (의도적으로) 의학적인 정신질환자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성은 남아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미쳐버린 상태의 인간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정복자 캉이 지배하는 공간은 마치 시민의 자유를 강조하는 현대 미국과 대비되는, 첨단 테크놀러지가 있어도 여전히 정치적으론 후진적인 와칸다의 또 다른 버전 같습니다.(참고로 <블랙팬서2>를 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습니다!) 그는 지배자이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약간의 비약을 넣어 해석하면 그에게 저항하는 원주민들이나 그들을 억압하는 캉의 모습은 의도치 않게 아프리카나 빈민국들의 현실을 연상시키며 저는 여기에 제작진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문화와 행동 방식을 가진 다양한 원주민들과 그들을 힘을 바탕으로 일률적으로 억압하려는 폭력적 지배자, 이들 사회에 떨어져 고통을 겪지만 선의를 갖고 돕고 싶어하며 끝내 저항할 것을 선동하는 백인 가정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우리에게 익숙하죠.
악역으로서 캉의 본래 매력이 극대화되기 위해 제작진은 미셀 파이퍼가 맡은 자넷과 캉 사이의 관계를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처럼 설정했습니다. 파이퍼 같은 대배우가 마블 시리즈에서 쩌리 조연 위치에서 벗어나도록 나름 극중 비중을 늘려주려는 의도도 있어 보였는데, 관건은 파이퍼와 캉 사이에 있던 비밀에 관객이 호기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파이퍼 자신도 급하게 만들어진 대본에 충분히 설득이 안 되어 보였고,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매력을 발휘하기에도 나이가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이 둘 사이의 협력과 갈등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매력 포인트였는데 너무 밋밋하게 그려진 감이 있습니다.
영화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선 이 둘의 암시적 밀월 관계가 근본적으로 주인공 일행의 가족관계를 깨뜨리고 영원히 양자영역에 가둘 만한 위협이 되어야 했지만 디즈니 내부의 방침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족을 깰 위기 단계로 넘어가기 한참 전에 서로의 일상적인 대화 수준에서 갈등이 조기에 봉합되어 버립니다. 자넷과 캉의 관계는 드라마 <로키>에서 실비와 캉의 관계처럼 선악과의 뱀과 여자 사이의 무엇이라는 연속적인(아마 앞으로도 이어질) 상징이 있기에 파이퍼의 선택이 남편과 딸, 가족을 배신하고 돌변(했던, 혹은) 할 것처럼 보인다든가 하는 위험 요소가 선명하게 드러나야 했는데 애초에 가벼운 가족 영화이기도 하고 분량도 벅차 그런 설정까지 다루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가족 관계의 갈등을 경미한 선에서 끝내는 대신 악역으로서 캉의 매력이 희생 당했습니다. 캉이 악역으로서 드러나는 근본 포인트는 힘으로 겁박하거나 약속을 어기는 게 아니라 시간(혹은 삶)과 존재를 대하는 관점과 가치관에서 주인공들과 선명하게 구별되고 대립해야 된다는 점인데요, 애초에 양자 영역에 떨어진 과정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동기 무엇도 분명하지가 않다 보니 캉과 주인공 일행을 구분 짓는 특징이 명확히 두드러지지 않은 감이 있습니다. 캉의 능력은 캉의 가치관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서 사용될 때 매력이 가장 극대화 되는데 그런 세팅이 부실 하다보니 능력 사용도 강해 보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마블이 추후의 어벤져스 영화를 위해 그가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능력이 서사나 액션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아껴 놓는 것 같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그는 시공간을 마음대로 다루는 본래의 캉이라기보다는 후진국의 정치 지도자 역에 가까운 느낌이며 (의미적으로 보면) UN같은 문명 사회에서 퇴출 당했지만 다시 진입하고 싶어하며 심지어 이주해서 살고 싶어하는 독재자에 가깝습니다.
<앤트맨3> 의 여러 가지 상황에서 미국의 서민인 주인공과 후진국 독재자나 다름 없는 캉이 명확하게 대비되는 부분이 있으며, 이것은 추후 어벤져스 영화의 방향과 핵심 내용을 상당 부분 미리 보여줍니다. (마치 로키와 실비의 다른 버전처럼) 앤트맨과 와스프가 복제되고 증식할 때에 그들이 가진 신념과 목적은 그들을 일치 시켜 원래 상태로 돌려 놓습니다. 즉, 주인공 일행의 자기 복제는 서로를 돕고(대개 여성이 돕는 구조를 강조하긴 하지만...) 끝내 선한 결과를 갖고 오지만 캉의 자기 복제는 계속 악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죠.
결국 어벤져스 후속작은 역사와 시간의 원치 않는 속성을 마주하더라도, 자기 존재가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수준의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수준의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경험 하더라도 다양한 존재를 소중히 여길만한 그 무엇이 히어로들 안에 과연 있는 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서로 간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찾아가는 과정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에 무엇이 있고 무엇을 원하며 어떤 댓가를 치르고 행동할 수 있는 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이번 영화에도 이미 압축적으로 담겨 있고요.
어벤져스 후속편에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영웅들의 마음이 선한 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캉이 가진, 인간이 가진 모든 헛된 희망을 앗아갈만큼 공포스러운 신념과 힘마저도 스스로 물러나게끔 꺾는다는 것을 보여주겠죠.
캉이란 캐릭터가 단지 육체적, 정치적, 기술적 파워를 과시한다고 해서 매력이 돋보이기 어려운 캐릭터이니만큼 앞으로는 보다 근본적으로 주인공들이 뭘 해도 안되게 느끼게 끔 캉이 시공간을 장악하고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어 주인공 일행 마음 속의 '희망(hope)'을 꺾고 꺼뜨리는 게 주 과제일 것이고 아마도 이미 제작진들 스스로가 알고 설정하고 있는 방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히어로들이 관객의 희망을 잔뜩 모아서 어렵게 어렵게 하는 일들을 캉이 잔인하리만치 무산시키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고요.
3.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게 보는 편인 이유
- 별 거 없습니다. 이 영화를 좋게 보는 딱 하나의 이유는 아무 생각도 기대도 없이 편하게 봤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영화가 가진 주인공 폴 러드가 연기한 스캇 랭의 그것같은 헐렁함 말이죠. 약간 어설픈 맛이 있어서 다른 마블 작품들에 비해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지고 뭔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지 않을 것 같은 편안함이 캐릭터와 주연 배우의 매력이자 작품 자체의 정서가 갖고 있는 특징인 것 같네요. 그 때문인지 미셀 파이퍼나 마이클 더글라스, 에반젤린 릴리 같은 대배우들이 뭔가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연기에 집중한 상태인 것처럼 연기하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뭐 그것도 보기 쉬운 경험은 아니니 나름 즐기면서 봤습니다. 이런 게 바로 문화의 날 7000원의 위력이겠죠!
PS. 캐시 랭 역의 캐서린 뉴턴의 몇몇 장면들에서... 젊음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화면을 뚫고 나올듯한 어떤 생기와 자기 매력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게 종종 보이더라구요. 역에 깊이 몰입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런 자신감이 예뻐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영화의 만듦새와 별개로 보기 좋았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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