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2번의 WBC에서 4강과 결승 진출이라는 큰 성공을 거둔 한국은, 이후 2번의 WBC에서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습니다. 2013년 네덜란드에게 패배한 후엔 '타이중 참사'라는 말로 자신들의 자만과 무지를 표현했고 2017년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경기를 보고 MLB.com에선 'WBC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올림픽까지 이어진 국제전의 부진은 한국 야구팬들을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런 여론을 뒤엎기 위해선 결국 성적이 나와야 됩니다. 선수 차출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모두가 동감하는 건 '최소한 1라운드는 통과해야 한다' 라는 점입니다. 그만큼 조 편성은 한국에게 크게 웃어주는 상황입니다. 과연 한국은 그동안의 부진을 씻고 다시 한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국제 대회에 출전해온 김광현은 이번 WBC에서도 중책을 맡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막아줘야 하는 역할과 동시에 양현종과 함께 투수조 최고참으로서 20대 초중반 젊은 투수들이 많은 한국의 투수진을 이끌어야 합니다. 김광현에게 그런 롤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작년 173.1이닝 동안 13승 3패와 평균 자책점 2.13을 기록하면서 소속 팀 SSG를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거기다가 WBC는 물론, 올림픽, 아시안 게임, 프리미어 12까지 수 많은 국제 대회 출전으로 그 누구보다 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입니다.
1988년생인 김광현은 올해 만 35세가 되기 때문에 다음 국제 대회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입었던 국가 대표 유니폼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대표팀 마운드를 지켜온 김광현의 관록이 어떻게 빛나게 될지 기대됩니다.
현 KBO리그 최고 마무리인 고우석은 이번 한국 대표팀에서도 마무리를 맡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소속 팀 LG의 주요 불펜으로 활약한 고우석은 지난 시즌 61경기에서 42세이브와 평균 자책점 1.48을 기록하면서 리그 최고 마무리로 올라섰습니다. 150 중후반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등을 구사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 투구 내용을 보여줬습니다. 향후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WBC 성적은 더욱 중요합니다.
거기다가 지난 올림픽에서 '탭 댄스'로 회자되는 어이없는 실책으로 인하여 많은 질책을 받았는데, 그때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고우석이기 때문에 지난 실수를 만회하는 차원에서도 좋은 활약이 꼭 필요합니다.
그 전에도 좋은 투수였지만 2020년의 구창모는 센세이셔널한 투수였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칭이었고 20대 초반에 리그를 평정할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긴 공백기를 갖게 됐고 유리몸이라는 불명예를 안으며 재활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복귀한 2022년 중반부터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구창모는 111.2이닝 동안 11승 5패 평균 자책점 2.10과 108탈삼진을 잡아내며 '건강한 구창모'는 리그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종목을 떠나서 운동 선수에게 '건강함'이라는 건 필수 요소입니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여도 나오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비 시즌 동안 장기 계약까지 맺었기 때문에 정말로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국제 대회는 분명히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건강한 구창모'급의 선수라면 국제 대회는 피할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베테랑 양현종과 KT에서 같이 뛰고 있는 고영표, 소형준 등도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현 KBO리그 최고의 타자 이정후는 2022년 0.349 / 0.421 / 0.575와 23홈런을 기록하며 9가 넘는 스탯티즈 WAR을 기록했고 wRC+ 182.5를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습니다. 이번 시즌 후 포스팅 자격을 취득하는 이정후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천명했습니다. 이미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진작부터 이정후를 관찰해왔고 MLB.com에서도 이정후 단독 기사를 쓰는 등 현지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정후에게 남은 가장 큰 과제는 직접 밝힌 것처럼 빠른 공에 대한 대처입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차원이 다른 공을 투구하기 때문에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진출 성패는 빠른 공 대처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이정후에게 있어서 이번 WBC는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고 빠른 공을 미리 상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고 한국 타선의 핵심인 이정후의 성적은 한국의 성적으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토미 에드먼은 이번 한국 대표팀에서 유일한 외국 국적의 선수입니다. '현수' 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는 에드먼은 어머니가 한국 출신이기 때문에 한국 대표로 선발될 수 있었습니다. 에드먼이 가진 최고의 강점은 역시 수비입니다. 내야 전포지션을 소화하면서 모두 수준급의 수비력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외야에서도 적지 않은 이닝을 소화했습니다. 수비에 있어서는 메이저리그 탑 티어가 확실한 선수가 바로 에드먼입니다.
그렇다고 공격력이 떨어지는 선수도 아닙니다. 지난 시즌 0.265 / 0.324 / 0.400의 타율, 출루율, 장타율과 13홈런 32도루를 기록하면서 좋은 공격력까지 보여줬습니다. wRC+도 108로 리그 평균 이상의 공격 생산력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2루에서 뛰겠지만 활용 가치가 높은 에드먼의 합류는 한국 대표팀에게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에드먼과 함께 짝을 이룰 유격수인 김하성은 작년 훌륭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2021년,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했지만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부상과 징계 등으로 자리를 비우자, 샌디에이고의 주전 유격수로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습니다. 특히 수비에서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KBO리그에서 김하성을 봐왔던 KBO리그 팬들에게 '김하성이 수비를 이렇게 잘했나' 싶을 정도로 큰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공격에서도 삼진율을 크게 낮췄고 2할 중반대 타율과 두 자릿 수 홈런을 기록하면서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발전된 모습과 아직 만 27세로 젊은 나이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여기에 주장을 맡은 베테랑 김현수와 홈런왕 박병호, 어린 나이지만 중심 타자로 활약하는 강백호 등 KBO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들이 모두 나섭니다. 주전 1루수로 기용될 예정이었던 최지만은 부상으로 인한 우려로 인해 소속팀 피츠버그가 차출을 거부하며 대체 선수로 SSG의 최지훈이 합류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대표팀에게 있어서 이번 WBC는 굉장히 중요한 대회입니다. 충격적이었던 지난 WBC들을 지나서 졸전을 거듭했던 도쿄 올림픽은 오래 전 일이 아닙니다. 언론에선 한국 야구 위기론을 설파했고 한국 야구계에 있어서 이를 반박할만한 일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WBC는 가장 큰 기회이자 가장 큰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결국은 성적을 내야 합니다. 과정도 분명 중요하지만 WBC는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 대회입니다. 일단 조 편성은 웃어주고 있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어떤 성적을 낼지 정말 여러 가지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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